1.
잿빛 폐허가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한때 나갈로프라고 불리우며 번영했던 그 도시는, 이제 그저 적막감만이 맴도는 거대한 공동묘지에 불과했다.
이곳에는 음울한 방사능 비가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린다. 다 무너져 내려가는 회색 거리에선 아무런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 오로지, 오래전에 도시와 함께 버려진 위험한 경비 로봇들만이 통제를 상실한 채 폐허를 배회한다.
나는 폐품상이다. 귀금속과 옷, 담배와 술, 전자 회로와 기계 장치, 더이상 인간의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아티팩트들……. 나갈로프와 같은 폐허더미를 구석구석 뒤져 그런 쓸만한 물건과 기호품 따위를 건져다가, 바깥 세상에 비싸게 파는 것이다. 뭐, 구려 보이지만 수입은 짭짤하다. 도적 무리나 경비 로봇과 마주쳐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번에는 조금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경비 로봇들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옛 나갈로프 중심가까지 진입해볼 생각이다. 중심가의 백화점에는 분명 비싼 물건도 많겠지.
2.
인기척이었다.
경비 로봇일까? 그랬다면 이쪽이 먼저 공격받았을 것이다. 다른 폐품상인가? 하지만 이 근방 수십 킬로미터 이내의 폐품상은 나뿐일 터이다.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폐허 도시의 고층 백화점에 노상 강도가 있을 리도 없다. 아무튼 누가 됐든, 우호적인 존재는 아니다.
"거기 누구냐!"
총구를 겨눈 그곳에는, 대신, 한 소녀가 있었다.
"우리 즈베즈다의 빛을 널리 세계에!" 소녀는 말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어서 오십시오, 손님! 톡톡 백화점 즈베즈다리움에 오신 것을 환경합니다. 저는 Foodnana라고 합니다. 톡톡에 방문하는 손님 여러분께 명작 애니메이션 <세계정복 ~모략의 즈베즈다~>를 소개하는 일을 맡고 있답니다!"
"인간…이 아니라 로봇인가. 칫."
경비 로봇도, 다른 폐품상도, 노상 강도도, '소녀'도 아니다. 그건 '소녀처럼 생긴' 로봇이었다. 처음에 느낀 두려움은 이윽고 약간의 놀라움과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이런 인간형 로봇이 나갈로프 같은 먼지더미 한가운데에서 여태 작동하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수십년간 주기적으로 자체 메인테넌스를 수행한듯 외관도 아직 깨끗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서기 2011년 아갈러스 공장에서 제작되어, 서기 2014년부터 이곳 톡톡의 영업을 돕기 위해 도입된 휴머노이드 K1EE-NEX 모델입니다. 다소 구형이기에 부족한 기능이 많습니다만, 손님께 폐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우리 즈베즈다의 빛을 널리 세계에!"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혼자인 건가? 사람은 아무도 없나?"
그러자 로봇은 다소 풀죽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던 분들은 모두 오래전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동료들이 여행에서 돌아올 날을 고대하며, 지금은 저 혼자 톡톡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즈베즈다의 빛을 널리 세계에!"
"……."
'여행', 인가. 이 외로운 로봇을 고용했던 스탭들은 아마 도시가 몰락할 즈음에 도망쳤을 것이다. 여행을 떠난다면서,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는 기약없는 약속(혹은 명령)만을 남긴 채 말이다. 물론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설혹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이미 수십년도 더 전의 일이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문득 그 로봇이 가여웠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경비 로봇들과 별 차이 없는, 쇳덩이 인공지능에게 왜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그보다 말이 참 많은 로봇이다. 대체 즈베즈다가 뭐야?
3.
"손님,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이제부터 명작 애니메이션 <세계정복 ~모략의 즈베즈다~> 전편 상영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지난 3일간 이곳에 머물면서 폐품상으로서의 본업도 잊은 채, 로봇이 갖고 있던 부서진 영사기를 고쳐줬다. 영사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자 Foodnana는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지었다. (로봇에게 '진심'이라니, 어폐겠지. 그래봐야 프로그래밍과 기계학습의 결과물 아닌가.)
내가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 녀석이 대견해서일까. 아니면 동료들의 운명도 모른채 줄곧 기다려온 녀석이 안타까워서일까. 어떤 이유에서였던간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짜피, 그놈의 '즈베즈다'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궁금해지던 차였으니 잠깐 어울려줘도 나쁠 것 없겠지.
나는 그대로 푹신푹신한 맨 앞자리 좌석에 몸을 파묻고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시켰다. Foodnana는 실시간으로 영상 코멘터리를 읊기 위해 스크린 옆에 서 있다.
"그럼 부디 좋은 여행 되시길! 우리 즈베즈다의 빛을 널리 세계에!"
4.
"이런 씨발! 이게 뭐라고 여태 즈베즈다를 팔아먹고 있던 거냐!?"
이 똥을 보느라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고친 영사기를 내던지고 권총을 뽑아 스크린을 벌집핏자로 만들었다.
"어라, 손님? <세계정복 ~모략의 즈베즈다~>는 우주 명작 애니로, 흑의 계약자 시리즈로 유명한 오카무라 텐사이 감독 특유의 연출이 빛을 발하며, 첫 도입부의 강렬함, 구차한 설명 없이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뛰어난 개연성, 의문점을 던지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개,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캐릭터들로 구성된 비밀결사 결사단이라는 독특한 그룹 설정으로 신선함을 자아내는 동시에 눈감아 왔던 현실적인 주제들을 끄집어내며 통렬한 사회 비판까지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대단한 작품입니다만, 대체 무엇이─"
"입닥쳐!"
탕─ 탕─ 탕─
빌어먹을 로봇의 대가리에도 9mm 권총탄 세 발을 쑤셔 박아줬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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