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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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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건 오프닝과 선형적 연출

2013.04.05 01:55

뀨뀨함폭 조회 수:99

덕계에 환멸을 느끼고 탈덕한지 어언 수십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종종 초전자포 1기를 회상하곤 한다. 

"레일건" 미사카 미코토가 손을 앞으로 뻗어, 동전을 튕기고, 전류가 발생하는 순간 - 
우리 시청자들은 마치 그 전기로 휘감긴 동전이 자신에게 날아온 마냥, 찌릿찌릿한 전율을 느꼈더랬지. 

뭇 덕후들이 다 함께 두 주먹 불끈쥐고 모니터를 향해 "하나떼!"를 외쳤던 4년전의 그 열기가, 흥분이, 
그 환희와 눈물, 감동과 좌절, 기대와 실망, 삶과 죽음, 톰과 제리, 음과 양 같은 것들이 잊혀지질 않아.
그만큼 레일건은 카와이하고도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각설하고... 
새삼스럽지만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레일건 오프닝에 관한 시덥잖은 졸문 하나 적어 볼 요량이다. 
이는 곧 방영할 2기를 감상하기 전에 심심풀이 땅콩으로 되새기자는 목적이다. 일개 오프닝으로 그냥 잊혀지기엔 아까우니까.
또한, 행여 레일건을 여태 보지 않은 무지몽매한 야인이 있다면 어서 감상하게 하고저 할 따름이기도 하다.


railgun.jpg

다들 '레일건 오프닝' 하면 먼저 떠올릴 Only My Railgun은 곡 자체가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글에선 다룰 주제는 Only My Railgun이 아니라 두번째 오프닝인 LEVEL 5 -Judgelight-, 정확히는 그것의 오프닝 무비다.



굳이 이름까지 알 필요 없으나 예의상 언급하자면 
타치바나 히데키(橘秀樹)라는 애니메이터 양반이 연출 및 콘티를 담당한 LV5의 영상.
 
전체적인 작화 퀄리티와 후반부 액션씬도 대단히 뛰어나지만
특히 무엇보다도 영상 중반부까지의 장면 전환 연출이 가히 예술 수준이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오프닝 무비는 오프닝 본연의 목적 -
작품 요약, 캐릭터 소개, 배경 소개, 분위기 전달 등 - 을 쉽게 하기 위해서
서로 무관하거나 시공간적 차이가 있는 장면들을 비선형적으로 짜집기 하기 마련이지. 

반면 LV5의 영상은 각기 다른 시공간/다른 인물을 묘사하는 쇼트들이 서로 끊김 없이 선형적으로 연결된다.
게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접합부나 컷 연출이 존재하지 않아.
(인위적임의 예 : 하루히 오프닝에서 초딩 하루히가 고딩 하루히로 바뀔 때의 오버랩)

대신 카메라워크, 캐릭터의 움직임, 사물의 움직임, 수평 구도와 수직 구도 등 '화면빨'을 완벽하게 써먹지. 
한 프레임 한 프레임, 한 쇼트 한 쇼트를 낭비하지 않고 활용하여, 모두 하나의 이어진 장면인 것처럼 통제한다.
시청자가 "지금 장면이 바뀌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 여지, 숨 돌릴 틈을 아예 안 줘.


11.gif  22.gif

좀 추상적이니 몇 가지만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영상 26초 부분에서 미코토가 도시를 향해 손을 뻗고 달려가며 그 방향으로 카메라가 확대(track up) 되는데, 
바로 다음 쇼트에선 반대 방향으로 축소(track back) 되며 학교 안에 있는 사텐을 비춘다. 좌짤 참고.

그리고 사텐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순간 운동장에서 팔굽혀펴기 하며 위로 올라오는(↑) 우이하루로 쇼트가 전환.
다크써클년이 차를 모는 장면이 나오다가, 로리선생년이 차에서 내리는 장면으로 전환. 

이런 식의 연출이 26초부터 1분까지 이어지며 주요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비춘다.

너무 난해하다고? "원숭이 엉덩이는 빠알개" 생각하면 편하다.




그리고 이 애니메이터 양반이 이전에 만든, 스카이걸즈 오프닝 영상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발견된다.
00:25~00:32 부분을 주목하자. 비록 짧긴 하지만 LV5에서 보여줬던 그것과 상당히 흡사하지.

아무튼 뜬금없이 튀어나온 좆고전 스카이걸즈는 뭐 그렇다 치고.

LV5에서 굳이 이런 연출을 길게 사용한 이유는 과연 뭘까? 
나도 몰라 씨발. 
아마 타치바나 할애비도 모를 거다.

하지만 굳이 억지스러운 비평을 짜내자면, 
도시 내의 모든 시공간이 일종의 네트워크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학원도시'가 작품의 배경인 것과 일맥상통하는 연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전자포는 2쿨 내내 학원도시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들만을 다루지.
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소재로 한 에피소드도 많고.

따라서 도시 전체를 배경으로 과감한 선형적 연출을 써먹더라도 그닥 부자연스럽지 않다.
미코토가 손을 뻗은 방향에 사텐의 학교가 있고,
운동장에서 뛰는 학생들이 갑자기 거리에서 뛰는 사람들과 겹쳐지고,
콘고가 지나가는 길거리에선 다크써클년이 차를 몰고 있고, 
쿠로코 뒤 건물 옥상에는 악당년이 똥폼잡고 서 있는,
이런 것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첨언하자면 사실 이런 류의 선형적 연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바카노의 오프닝일텐데... 
이 역시 2000년대 애니 오프닝/엔딩 베스트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유명하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귀결되는 군상극의 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런 연출을 썼다.

길고 쓸데없는 해설들은 사실 별 의미 없으니 굳이 읽을 필요 없고, 영상만이라도 봤으면 한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좋은 영상이나 연출을 종종 소개해볼까 합니다.

결론은 레일걸짱짱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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