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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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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 애니메이션은 이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옛날옛적 어딘가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깊은 슬픔에 빠진 어린 공주님이 있었습니다.
그런 공주님 앞에 백마를 타고 여행 중인 왕자님이 나타났습니다.
늠름한 모습, 상냥한 미소……. 왕자님은 공주님을 장미 향기로 감싸서 눈물을 없애 주었습니다.
'혼자서 깊은 슬픔을 견디는 어린 그대여. 그 강인함, 우아함을 어른이 되어도 잊지 말아요.
오늘의 추억으로 이것을…….'
'우리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 반지가 그대를 나에게 인도해 주겠지.'
왕자님이 주신 반지는 역시 약혼 반지였을까요…….
거기까지는 좋은데, 공주님은 왕자님을 동경한 나머지 자기도 왕자님이 되겠다고 결의를 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정말로 그걸로?
그리고 이 작품은 90년대 후반 애니메이션계의 변혁을 주도하게 됩니다. 
이쿠하라 쿠니히코와 창작집단 Be-papas. 그들이 만든 애니메이션의 어떤 면이 이 작품을 명작으로 만든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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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까지의 애니업계에 관하여 알아보자

굉장히 성차별적이라고 느껴지실지 모르겠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여성이 끼어들 수 있는 공간이나, 여성에게 허용하고 있는 범위는 굉장히 협소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애니메이션을 주로 소비하는 층은 남성에 지나칠 정도로 편중되어 있고, 여성을 위한 애니메이션(단순한 순정만화든 여성향BL이든...)이 만들어지는 양은 남성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양에 비해 굉장히 적습니다.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말이죠. 
사실, 여성향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들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요술공주 밍키』라든지,『미소녀전사 세일러문』이라든지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든지,『신 기동전기 건담W』나『천공의 에스카플로네』등 여성 애니메이션 팬의 취향을 맞추었다고는 하지만, 통속적인 남녀의 구도를 고착시키고 남성향 코드와 결부시켜 바라보는 시선의 대상으로 여성을 그려내는 "준 남성향"이었습니다. 
이처럼 여성에게 굉장히 제한적인 공간만을 마련해 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흔히 "전설" 또는 "혁명"이라고 말하는 작품인『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등장 이후에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게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비약적인 발판을 마련해 준『신세기 에반게리온』도 결국은 메카닉, 소년의 성장, SF 등등 남성향적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년 애니메이션'으로 끝남으로서, 남성들을 위한 폐쇄적인 판타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여성향의 개척"이라는 관점에서는 씁쓸한 성공을 보여준『신세기 에반게리온』이지만, 이 작품 덕분에 애니메이션계 팬층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연스레 여성팬의 증가를 야기했으며, 이들은 남성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자신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렇게 결국 97년 4월,『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되었던 TV도쿄를 통해 여성향 애니메이션인『소녀혁명 우테나』가 방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많은 관심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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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엇이 이 작품을 명작으로 만들었는데?

1. 다양한 "여성향" 작품의 코드를 차용하여 새롭게 구성하였다. 

이 점은『신세기 에반게리온』가 추구했던 컨셉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동안 소외당했던 "여성향"의 코드를 차용했다는 점입니다. 캐릭터 디자인은『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차용했습니다.(후에 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은 인터뷰에서 차용하고 싶어도 차용할 곳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작품에 사용된 여러가지 소품들도 굉장히 순정풍이라는 느낌이 납니다. 
그리고 캐릭터의 컨셉은 변신소녀물에서 차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단을 올라가며 차례차례 변신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야오이적(=BL적) 코드를 담아내어 여성이 바라보는 남성의 육체를 그려냈으며(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여성들에게 거부감이 심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레즈비언적 코드, 소위 말하는 "백합물"의 코드마저 담아냅니다. 이 백합물 붐이 언제 일어났는가를 생각하면 이 코드가 담겨있던 97년도 작품은 굉장히 진보적인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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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야요이적 코드는 오히려 여성들이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사실 남자들이 서로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좋은 사진도 있지만 그건 패스...

2. 그리고 그 변신소녀물로서의 한계를 넘었다. 

그 당시까지 변신소녀물이라고 한다면 공주, 요정, 귀여운 동물 등의 변신을 대상으로 굉장히 고착적인 성역할을 그려냈던 것들이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걸 뛰어넘어 왕자의 영역까지 넓힙니다. 그렇게 여성에 대한 무형의, 유형의 억압을 부숴버리고 시스템 자체의 변혁을 기도할 정도의 진보적인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습니다. 

3. 작품에 담긴 심오한 주제들

위의 모든 내용들은 아직까지 전체 내용의 겉보기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내용과 주제는 훨씬 더 심오합니다. 진보적 페미니즘에 관한 고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데미안의 알의 구절을 인용한 세계의 혁명과 자아의 정립. 이쿠하라 감독은 옛스러운 느낌의 영상미와 특이한 연출을 통해서 이처럼 사회학적 주제와 철학적 주제를 심오하게 다루었으며, 심지어 논문까지 나왔으며,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수십 가지 해석이 나오는 작품입니다. 혹시 이런 주제를 전문적으로 배우셨거나, 제대로 찾아보고 싶으시다면 이 작품을 한 번 보는 게 어떨까요?


이런 점이 좋았다!

1. 특이한 시리즈 구성

이 작품은 매우 특이하게도 1화 또는 2화만에 기, 승, 전, 결이 딱딱 끊어집니다. 그와 동시에 메인 플롯을 진행시키는 구조이죠. 개별 에피소드의 갈등의 진행 양상은 대부분 비슷한 패턴을 보이지만, 각각의 절묘한 캐릭터성과 그들의 인간적인 갈등과 맞물리면서 각 편마다 나름대로의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구조입니다. 마치 기, 승, 전, 결 하나가 끝나면 점점 스케일이 커져가는 듯 하죠...우테나가 결투를 위해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과 같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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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발한 연출

이는 작품을 봐야만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반부에 가면 갈수록 기발한 연출은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연출을 보다가 마지막에 반전이 나왔을 때는 정말 머리가 멍-해집니다. 특히 결말 부분(정확히는 38화)의 반전은 보지 않는 이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반전을 따라갈 작품이 아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3. 굉장히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아이템들

이 작품은 정말로 은유와 상징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네무로 기념관 엘리베이터는 심층 의식을 향한 통로를 상징하고 있으며, 주역 두 명의 이름조차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안시는 라틴어로 "꽃이 피다"라는 말에서 따온 이름이며, 우테나는 "꽃의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는 기관"을 뜻합니다. 이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결말에서 확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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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엘리베이터같은 경우는 정말 소름끼쳤습니다. 
특히 남자의 목소리가 나와서...

이런 점은 보기 불편했다...

1. 지나치게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소재

이 감독이 현재 만들고 있는 작품인『도는 펭귄드럼』에도 근친상간이나 스토킹 등의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 더합니다. 페도필리아부터 시작해서 동성애, 근친상간, 의붓남매, 이지메 등등 자극적인 소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재는 가끔씩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2. 비밀주의와 지나치게 불친절한 전개

이 작품은 매우 비밀이 많습니다. 결국 왕자님이 왜 힘을 잃었는지, 안시가 왜 마녀인지 설명조차 해주지 않습니다. "비밀"이라는 거죠. 거기다가 이제 중후반 쯤 가면 지나치게 불친절한 전개에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다만 결말은 굉장히 확실합니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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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비록 이렇게 여성향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아직도 애니메이션계는 남성향 판타지로 가득 차 있으며, 남성 중심적이죠. 어찌보면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계를 혁명시키는데는 "실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견고하게 쌓아 올려져 있던 남성향의 애니메이션계에 교란을 일으켰으며, 이 작품으로 인해서『프린세스 츄츄』등 어떠한 남성향 코드와도 타협하지 않는 순수 여성향의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데 미약하게나마 원동력이 된 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세계를 혁명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소녀를 혁명시킨 데는 성공한 우테나처럼 말이죠. 
이 곡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좋오하는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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