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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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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의 마법소녀들 이야기.

2011.04.26 14:21

올릉 조회 수:1419 추천:1




1. 시작하면서.

마마마 결말 난지도 이제 며칠 됐고,
근 몇년만에 제대로 흥미를 유발하고 동시에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 애니기도 해서, 마마마를 한번 정리해 보자는 취지로 글 쓴다. 전에, 쿄코와 사야카에 대한 글을 여기 올렸었는데, 사고로 날아가 버려서 한 며칠간 정리글 쓸 의욕도 없어지긴 했어도 뭔가 캐릭터 중심으로 먼저 한번 정리해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 아닌 의무감을 느껴서.

먼저 이야기 하고 들어가자면, 난 마마마라는 애니메이션은 정말 좋아하고, 동시에 마마마의 결말은 그만큼 좋아하지는 않아. 마마마가 할 수 있었던 최선에서 모자란다고 볼 수도 있겠고, 어찌 보면 그냥 내 취향에 안 맞는 결말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 해두고 싶은건, 마마마 결말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라고 그게 꼭, 자극적, 절망적인 엔딩, 혹은 반전만을 찾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말을 끝내 버리는건 속단이라고 생각해. 다른 리뷰에서 그런 말을 몇 번 봐서 하는 말인데, 절대로 그렇지 않아. 비극적 엔딩을 원한 사람도, 절대로 생각이나 논리가 없이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줬으면 좋겠어.

또 말하자면, 나는 마마마를 보면서 반전이나 놀라운 전개를 바라고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여기저기 심어둔 떡밥 가지고 예측하는것도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요소들이 마마마와 우로부치의 장점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 내가 마마마에서 높이 평가한 건, 우로부치라는 스크립트 라이터의 역량으로 표현된 캐릭터들 사이의 묘한 감정의 기류라던가, 현실적인 가치관의 혼돈, 가치관과 가치관의 충돌, 그 사이에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처. 이런 요소들이었어. 앞으로도 계속 나올 얘기긴 하지만, 10화 이후의 전개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한 묘사가 대폭 줄었지. 적어도 현실성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고 봐도 좋고.

이런 점을 감안하고 봐 줬으면 해. 당연히 내 리뷰는 매우 주관적이고, 내가 바라는 요소들을 중시해서 엔딩을 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오히려 그랬으면 대중성은 많이 줄었겠지. 하지만 그랬으면 나는 이걸 명작의 반열에 넣을 수도 있었을 거고.


File:Sayaka-music-healing-circles.jpg

2. 미키 사야카

마마마 방영 내내, 적어도 10화까지는, 많은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사야카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어. 사야카는 우로부치 본인이 밝혔듯이, 각본가의 애정을 가장 많이 받고, 공을 가장 많이 들인 캐릭터야. 9화까지는 실질적인 주인공이었지. 그리고, 나는 각본가가 그렇게나 공을 들인 만큼, (언젠가 정리해서 올리겠지만, 부여된 텍스트량과 의미 있는 대사, 그리고 심도 있는 감정 묘사는 사야카가 압도적으로 분량이 많다.) 사야카는 감정을 이입시키기 좋은 캐릭터야. 아니, 최소한으로 말하자면, 호불호가 매우 명확히 갈리는 캐릭터지. 감정 묘사를 상세히 해주니만큼, 거기 공감을 한다면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고 -혹은, 지금 좌절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학에 가까운 심정으로 혐오할 수도 있겠지만 - 거기 이해를 못 한다면 쟤 왜 저렇게 무의미한 일에 감정을 소모하지?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지. 

또한 사야카는 어떠한 '모에'코드로 묶어서 좋아하기엔 어디에도 별로 속하지 않아. 사야카는 우메선생이 디자인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로부치가 직접 지시해서 디자인한 캐릭터로 알고 있는데, (이건 어느정도 확실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음) 아무튼 사야카는 외모에서부터 인기 있을 타입은 아니었지. 장발도 아니고, 키가 작지도 크지도 않고, 가슴도 작지도 크지도 않고. '속성'으로 분류해서, 그 속성을 파는 사람들이 좋아할 외모는 절대로 아니었다는거야. 이건 마미, 호무라, 쿄코, 마도카와 대조해보면 확실한 차이지. 그래서 나도 처음부터 사야카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지금 와서 사야카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처음 볼 때는 별 생각 없었을 거야.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기에, 사야카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은 어떤 캐릭터를 캐릭터로써 좋아하는게 아니라, 사람으로써 좋아하고 받아들이게 된다고 볼 수도 있는데 써놓고 보니 좀 과대해석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우로부치가, 마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큰 가슴의 상징성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도 분명히 있고, 호무라 팬덤의 대부분이 '호무호무'로 엮이는 부분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지.

이야기가 좀 샜는데, 내가 하고싶었던 말은, 사야카가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마법소녀라는 거야. 현실성, 인간성은 다른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다시 나올 말이니까 그 기준에 대해 생각해봐.

12화에서 사야카가 정말 예쁘게 나왔지. 사야카의 헌신적인 사랑을 정말 잘 표현해 준 장면이라고 생각해. 말 그대로 인어공주잖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자신은 목숨을 버리고 인어공주가 되어 버려. 조금 속상한 마음도 있지만, 자신이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마저 버려가면서. 한숨이 나올 정도로 좋은 장면이었어. 사야카라는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그건 내 생각에는 사야카의 절반의 결말일 뿐이야. 어쩔 수 없지. 마마마는 희망적으로 끝난 이야기니까. 하지만 사야카를 말하는 데에, 사랑 말고도 또 다른 키워드가 반드시 필요하지. 이상이라는.

이 부분이 또한 제법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인데. 다들 사야카라는 캐릭터에 대해 어느정도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니 나는 나의 생각을 말하겠어. 사야카가 품은 이상은 특별히 숭고하거나 높은 이상이 아냐. 사야카라서 특별히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라는 말이지. 이건 사야카의 정의가 미숙하거나 그랬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 절대로 아냐. 오히려, 사야카가 품은 이상은, 굉장히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정론이야. 사람이 죽는 건 싫다.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지켜야 한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잖아. 안 그래? 살인범이 살인강도를 저지르고 돈을 주면, 그 돈을 받는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사야카의 정의는 고고하지 않고, 공감 가능한 상식선 수준의 정의야.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감이 가능한 거야. 나라도 사람을 돕고 싶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힘이 있었더라면 타인을 위험에서 구할 거다- 라는 생각은 모두들 하고 있잖아? 아니면 내가 성선설을 너무 신봉하는건가?

사랑을 해본 적이 있고, 아무리 작더라도 이상을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야. 사야카가 겪은 실패도, 지극히 이해하기 쉽고, 묘사도 잘 되었으며, 현실 세계에서도 무수히 일어나는 종류의 실패지. 악의로 가득 찬 세상과, 너무나도 약한 자신의 힘. 조금 극단적인 방식으로 사야카에게 닥쳐오긴 했지만, 세상 경험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사야카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을거야. 자신이 좋은 의도로 한 일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신이 지키려고 노력한 가치가, 결국은 무가치한 것으로 밝혀질때의 아픔은 견디기 쉬운 것이 아니니까. 게다가 사야카는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했어. 자신이 '옳지 않은' 생각을 잠깐 해 버린 것 만으로도 심하게 흔들려 버렸으니까. 견딜 수 없는 연민과 연모를 느끼고, 아픈 모습을 보이면서도 보통 사람이면 오래 전에 굽혔을 시점에 굽히지 않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친구에게까지 상처를 입히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아픔을 느끼고. "나는 정말 바보야." 라는 말을 하면서, 눈물방울이 소울젬에 떨어져 깨질 땐 진심으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사야카는 인간이야. 너무나도 약하고 결국은 그래서 깨져 나가 버리지만, 그래도 그 모습이 아름다운.
그리고 인간은 인간에게 공감할 수 있는거고. 인간인 나는 그래서 사야카에 가장 공감이 가는거고.


File:Prayer and kiss.png

2. 사쿠라 쿄코.

초반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나왔지만 쿄코는 사야카와 같이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캐릭터지. 타인을 위해 소원을 빌지만 배신당하고 좌절하고. 보통 사람들은 쿄코가 결국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쿄코가 훨씬 강하다, 혹은 어른스럽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5화에서 쿄코의 논리를 봤지? 사역마가 사람을 먹고 마녀가 되게 놓아 두면, 자신은 마녀를 먹고, 이기적으로 자신을 위해 살아갈 뿐이라고. 저건, 쉽게 말하면 살인 방조고, 좀 가혹하게 말하자면 간접적 식인이야. 쿄코는 살아남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정말로 큰 대가를 치뤘어. 사야카 이야기하면서 말한, '보편적인 정의'라는 건, 사실 쉽게 저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냐. 쿄코는 스스로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사야카처럼 죄책감에 부서지지 않기 위해 그런 기본적인 무언가를 던져버린거고, 그건 절대로 잘 한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문제야. 쿄코 스스로에게도 결국 좋았다고 할 수 없어. 왜냐하면 쿄코는 바탕이 선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하자면 마마마에 나오는 애들 다 착하긴 하지만.

쿄코가 태도를 전환한게 갑작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쿄코의 변화도 계속 암시되어 왔어. 그리고, 별로 이야기되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장면이, 7화의 성당에서의 장면이야. 쿄코는 말하지. 사야카도, 자기처럼 스스로만을 위해 살자고. 자신의 가장 아픈, 숨기고 싶을 과거까지 이야기해가면서. (이 장면이 내 생각엔, 사야카의 마지막 지하철역 장면에, 사야카가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었던 아픔을 쿄코에게 이야기하던 부분과 대구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6화에서 소울젬의 비밀을 알고, 사야카와 쿄코는 모든 것이 흔들려 버렸어. 그 와중에, 예전의 자신의 모습과 비슷했던 사야카에게, 자신은 인정받고 싶었던거야. 이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이게 옳은 길이다.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자기 정당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으로 사야카를 위하고, 사야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엮여서 그런 말을 하게 된 거야. 사야카는 거기에, 사과를 어디서 얻었는지 말을 할 수 없다면 그걸 받을 수 없다고, 받아도 기쁘지 않다고 말하지. 이 장면은 중요해. 쿄코는 사과를 어디서 구했는지 말을 하지 못 했어. 그리고, 사야카는 전이라면 그랬을 것처럼 쿄코를 도둑이라고 비난하거나 사과를 던져버리지도 않았지. 그건, 쿄코의 마음이 사야카에게 닿았음을 말해. 그래서 사야카는 그 사과가 어디서 났는지, 쿄코에게 굳이 물어 본 것이고. 쿄코가 정말 근본부터 나쁜 사람이었다면, 사과 그냥 산 거라고 거짓말을 해 버리거나, 답을 안 해 버리면 그만일 문제거든. 하지만 쿄코는 분명한 가책 비슷한 것을 느꼈고, 사야카는 굳이, 정당하지 않은 사과를 받아도 '기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행간을 읽으면, 제대로 대가를 치른 사과라면 받으면 기쁠 것이라는 말이지. 쿄코가 사야카가 자신처럼 살기를, 그래서 자신을 정당화시켜주길 바랄때, 사야카 또한, 자신이 추구했던 가치를 쿄코와의 대화를 통해 재확인 한 거고, 역으로 쿄코가 자신과 함께해 주기를 바란 거라고 생각해. 굳이 자신을 죽이러 온다면 원망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 하면서.

그 장면에서 나는 이미 쿄코는 사야카의 방식에 많이 재설득당한 것이라고 생각해. 사야카의 모습은 자신이 동경했던 모습일 테니까. 그리고 7화의 마지막에 사야카가 무너져 버리는 장면에 있어서는, 아예 사야카를 구하러 들어가 버린 거고. 이 모습은 8화 내내 계속되지. 그리고 9화에서는 아예, 자신이 동경하던 사야카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고. 7화의 성당 씬에서, "우리는 마법 소녀라고! 동류는 없다고!" 라고 화를 내던 모습 그대로, 쿄코는 사야카를 이해해줄,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줄 사람이 자신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돼. 사야카의 이상과 그에 따른 좌절을 그만큼 겪은 사람은 쿄코밖에는 없으니까. 그래서 사야카가 외롭지 않도록, 그리고 자기 자신이 좌절 속에서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하여, 쿄코는 사야카와 같이 가 주지.

그리고 쿄코 역시도 현실적인 캐릭터야. 자신의 도덕과 이상을 모두 저버리는 것 역시, 다소 극단적이긴 해도 다들 겪는 일이지. 소위 '어른이 된다'라고 하는건 다 그냥 자기 변명이고, 마음 속에는 선이 있지만 그걸 자신을 속이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전에 썼던 글도, 사야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쿄코에 이입을 한다고 보는건데, 그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 쿄코가 부럽다고 보는게 낫지. 사야카에게 우리가 해 주지 못한 일을 대신 해 주었으니까.

쿄코가 성녀다- 라고 말하는데, 그건 어쩌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비유야. 쿄코는 그냥 성녀라기보다, 까뮈의 페스트에 나오는 신 없는 성자에 가깝지. 세상은 어쩌면 지킬 가치가 없을지도 모르고, 세상을 살아야 할 목적은 규정될 수 없고, 어둡고 이기적이고 해답도 탈출구도 없는 세상이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을 그 목적으로 삼고, 선의의 원천으로 삼아, 나아가 타인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페스트의 타로우 처럼.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신과 부여받은 가치를 한 번 부정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세속의 사랑이고 세속의 신성함이야. 그래서, 쿄코도 지극히 현실적이지.  

'바보'라는 말이 마마마에서 열 번 가량 나오는데, 딱 두번 (한 번은 3화에서 호무라가 묶여서 마미에게 한 말.) 빼고는 모두 사야카를 칭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바보'는 쿄코가 사야카를 구하려는 스스로에게 한 말. 사야카의 마음과 이상이 쿄코에게 전해진 걸 뜻한다고 생각해.

덤으로 말하자면 12화에서 쿄코가 제일 불쌍했음. "드디어 친구가 되었는데!" ㅠㅠ


File:Madoka 10 02.jpg



3. 아케미 호무라

호무라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스토리텔링에 따라 일관성이 좀 부족한 캐릭터기도 해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결론부터 말하면.

호무라는 그리스-로마 신화적인 캐릭터야. 그 중에서도 시지프스와 같지. 초인적인 능력 (그냥 다른 마법소녀 능력보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은 매우 특별한 성격이지. 소원은 말할 수도 없고.) 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혹한 시련을 반복해서 겪어 나가는 비극적인 캐릭터지. 호무라가 그러한 고통을 통해 성격이 변해 나가는건, 10화에서 침대에서 일어나는 호무라의 표정 변화로 매우 잘 표현했다고 봐. 내가 호무라에 대해 가장 좋아하고, 가장 표현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처음에 등장한 말 없고, 자신감 없고, 아무 것도 못하는 소녀였던 호무라가, 점점 비극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표정이 굳어가고, 마도카 라는 단 하나의 불빛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과 세상에 관심을 끊고, 점점 어둡고 비인간적으로 딱딱해져가는 그런 느낌이 정말 좋았어. 그래서 1~9화에서 냉정하고 피도 눈물도 없으며 마도카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때로는 마도카에게조차) 비정한 모습을 보이는 부분도 납득이 되었던거고.

그렇게, 아픔과 좌절을 통해 무감각해지고, 감정을 많이 잃어간 호무라가 결말 부분에서, 마도카와의 대화를 통해 성장 (혹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좌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11,12화가 그런 전개로 가진 않더라고. 말했지만, 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충돌과 감정선의 떨림을 보려고 마마마를 본 건데, 확실히 11화 12화에선 장르가 좀 바뀌어서. 호무라 자신도 성격이 변한 것 같고, 뭐랄까 마지막엔 마도카 띄우려고 호무라를 희생시킨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조금 부조리한것 같았다. 나는 호무라가 성격이 그렇게 된 걸 설명한만큼, 다시 호무라가 희망을 안게 되는데 있어서 설명을 했어야 된다고 보는데, 분량도 부족하고 뭐... 그랬으니. 2쿨이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야. 호무라가 수많은 루프를 통해 인간성을 잃어간 부분이 가장 흥미진진하고, 그 와중에 어떻게 다시 인간으로 거듭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가장 궁금했는데.

11화 예고에서, '그 아이들의 아픔이 느껴지지도 않았어?' 라고 마도카가 한 말은 난 당연히 호무라를 향한 말인 줄 알았다. 호무라는 어쨌든 마도카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좀 안 느낀 게 사실이긴 하니까. 그래서 그 말을 듣고 호무라가 자신을 변호하건, 좌절해서 마녀가 되건, 끝까지 뜻을 관철하건, 아니면 정말 마도카를 통해 긍정적 성장을 이루고 다른 사람을 보게 되건 난 그렇게 진행되어서 호무라와 마도카 사이의 감정을 확실히 구축했어야 한다고 보는데 그 부분이 아쉽네. 큐베한테 그딴 말 해봐야 알 게 뭐야. 스스로 감정도 없는 유틸리태리언이라고 말하는 놈한테 왜 남의 고통을 못 느끼냐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냐. 호무라는,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죽었을지언정 마도카에 대한 마음만은 남아있으니,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근데 호무라에게 공감이 정말 힘든 이유는 루프의 주체기 때문이지. 루프 뛰는 놈은 자기만 깨끗해보이기도 하고, 한번뿐인 삶을 사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최후의 보루 하나는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니까. 그거 알고 사는 사람이면 절망하게되는 시점 자체가 달라지는게 당연하지.

덤으로 말하자면, 호무라가 유독 사야카에게 냉혹하고, 사야카가 유독 호무라를 적대하는 이유는 결국 동류혐오인것같다. 둘 다 한 사람을 위한 소원을 빌었고, 적어도 마지막 전까지는, 그 사람들은 호무라와 사야카를 돌아봐주지 않았지. 그런 부분에서, 사야카가 호무라의 거짓과 절망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 아 그리고, 이번 1~9화까지에서 호무라가 사야카에게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말 한건, 이전 루프에서 1. 호무라가 옥타비아를 죽였음. 그리고 2. 마지막 순간에 바로 그 옥타비아의 그리프 시드로 인해 살아남았기 때문에, 일부러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리고 사야카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더 큰 부채감을 숨기기 위해 더 냉정하게 말 한것 같아. 미키 사야카는 포기하라고. 자신이 이미 죽였으면서도, 그로 인해 마녀가 되지 않았으니까.

File:Madoka-loveletter.PNG

4. 카나메 마도카

사야카가 인간, 쿄코가 세속의 성인, 호무라가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라면 마도카는 예수 그리스도. 뭐 이건 다들 하는 얘기니까 자세하겐 말 안할거고.

확실히 공감이나 이입은 할 수가 없어. 1~9화 사이에서의 상냥하지만 언제나 망설이는, 사랑스러운 소녀 마도카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납득할 만한 소원을 빌고 어떤 엔딩이건 낼 것인가가 정말 궁금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연결고리가 헐겁다는 느낌이 든다. 마도카의 마음은 사랑과는 다르고, 굳이 말하자면 자비와 가깝지. 자비는 자신이 여유가 있을 때 우러나올 수 있는 감정이고, 사랑과는 달리 대상이 여럿일 수 있는 감정이지. 그런데 그만큼, 필연적으로 덜 깊을수밖에 없어. 상대가 나를 알고 있느냐, 내가 상대를 알고 있느냐와 전혀 관계가 없는 일방적인 마음이니까. 그리고, 이건 마도카가 거대한 힘을 가지게 된 것과 필연적으로 엮일 수 밖에 없는 문제인데, 자비는 내가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오만함이지. 예수도 그랬어. 대승불교 경전에 따르면 석가나 보살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그 부분이 불편하고, 감정 이입이 잘 안돼. 게다가, 그 전의 마도카가 이렇게 변하게 된 부분도 극중에서 설명이 정말 안 됐다고 보고. 마도카는 마마마 안에서도 가장 평면적인 캐릭터지. '힘이 있다면 뭔가 하고 싶다'야, 사실. 마도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거야.

물론 마도카는 착한 아이야.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있기 싫어서' 그런 소원을 빈 거야. (엄밀히 말하면 스스로에게 직접 닥친 시련은 적은 편이지.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렇게 마법소녀를 절망에서 구하기 위해 그런 소원을 빈 거고, 결과만 보면 행복에 조금 더 가까이 가긴 했는데. 글쎄. 신학에 대한 메타포를 다시 생각하면, 그건 믿음을 통한, 신앙을 통한 구원에 가깝지, 인간이 인간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구원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거야. 기독교를 믿으면, 이승에서의 삶과는 관계 없이 천국에 간다는 교리처럼.

그래서 난 마마마 결말이 잘 났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부분이 불편해. 난 차라리, 마도카가 호무라 하나만을 구하는 엔딩이었으면 훨씬 더 이입을 잘 할수가 있었을것 같아. '모두를 구하기 위한' 희생보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희생이 훨씬 극적이고, 인간적인 텍스트라고 생각하거든.

바로 그런 이유로, 마마마 명목상 주인공인 마도카에 대해서는 가장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결국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난 마도카식 구원은 결국은 진정한 치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절망할 일이 있으면 절망해야해. 억지로 절망을 거세해버리는건 거짓 자비야. 그녀들의 '고민과 소원이 무의미한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라고 말 한마디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야. 그건, 정신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고뇌하는 철학도에게 약물치료를 하는 것만큼이나 무딘 방식의 이타심이야. 물론 씨바 내가 애니 하나 보고 무슨 얘기를 하고싶은거냐.

이정도면 메데타시 메데타시지. 마마마 잘 봤음.

다만, 노선을 인간관계와 감정선 중시 노선으로 계속 가져갔다면 난 훨씬 좋아했을거야. (그리고 흥행똥망)


p.s.

마미 - 마미에 대해서는 에밀이 훨~씬 잘 정리해놨음. 곧 개념글 올 거니까 거기 보면 될듯.
큐베
- 큐베는 진짜 유례 없이 폭풍간지였던 쩌는 악역이었는데 12화에서 왜 이렇게 전락하냐... 제일 아쉬운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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